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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퇴근길. 문득 길가 포장마차의 투명 비닐문에 뿌옇게 서린 김에 눈길이 멎는다. 머릿속에선 자연스레 뜨끈한 라면 한 그릇이 떠올라 발걸음을 떼기 힘들다. 라면!!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서민들의 영원한 간식. 다음날 퉁퉁 부은 얼굴을 각오하고서라도 먹지 않고는 끝내 잠들 수 없는 애증의 대상.
박병구(76·사진) 할아버지에게 라면은 간식이 아니라 주식이다. 32년째 하루 세 끼 라면만 먹고 살고 있다. 지난 9일 낮 12시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산 자락의 산골마을에 살고 있는 라면 할아버지 집을 찾았다. 한창 점심을 먹고 있던 박 할아버지 밥상에는 예상처럼 방금 끓인 듯한 라면과 백김치가 올라와 있었다.
박 할아버지는 “내 나이 마흔네 살 때부터 먹기 시작한 라면을 지금까지 먹고 있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세월만큼 먹은 라면은 약 5만4000봉지. 열흘에 48개들이 한 박스, 하루 평균 4.8개꼴이다.
박 할아버지가 처음 라면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위장병에 시달려 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할아버지는 우연히 라면을 처음 먹게 됐다. 그렇게 맛본 라면의 부드러운 면발이 밥보다 쉽게 넘어가는 것 같아 그 뒤로 라면만 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라면과 맺어진 인연은 끈질겼다. 할아버지는 “이제는 라면이 맛있다는 생각은 안 한다”며 “그래도 인이 박여서 그런지 밥맛을 완전히 잃어버려 할 수 없이 라면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1958년 일본에서 처음 나온 라면은 1963년 삼양식품이 국내에 소개했다. 처음 출시될 때 라면 한 봉지 가격은 10원.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20∼30원 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 아내 최정숙(62)씨는 “그때 우리 식구가 한 달 먹는 쌀값보다 이 양반 먹는 라면값이 훨씬 많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최씨는 “지금이야 라면이 싸지만 처음 먹기 시작할 때는 값이 꽤 나갔었다”며 “예전에는 쌀 한 말가웃은 팔아야 라면 한 박스를 살 수 있었어. 그렇게 지출하는 돈이 한 달에 쌀 다섯 말 값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마을에도 상점이 있지만 박 할아버지가 처음 먹기 시작했을 때는 라면을 살 가게조차 없었다. 마을에서 십리(약 4km)나 떨어진 다른 마을에 가서 라면을 사 날랐다고 한다.
박 할아버지가 한 달 먹는 48개들이 라면 세 박스는 가격으로 치면 8만원가량이다. 다행히 10여년 전부터 농심이 매달 세 박스를 무료로 보내줘 적잖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박 할아버지가 즐겨 먹는 라면은 농심 ‘안성탕면’.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이런저런 라면을 다 먹었는데 이것만큼 입맛에 맞는 게 없어 여태껏 먹고 있지”라며 웃음 지었다. 안성탕면은 1983년 시판됐다.
할아버지가 라면을 끓여 먹는 방법도 독특하다. 일단 면을 끓인 뒤 뜨거운 물을 절반가량 버리고 찬물을 조금 부은 뒤 수프를 넣어 비빈다. 아내 최씨는 “(박 할아버지가) 이빨이 없어 뜨겁지 않게 먹으려고 찬물을 붓고, 국물은 먹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라면은 최씨가 끓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할아버지가 직접 끓인다고 한다. 32년간 라면만 먹고도 몸에 이상은 없을까. 박 할아버지는 “예전에 위장병에 걸렸을 때만 해도 몸이 많이 안 좋았는데, 라면을 먹고 난 뒤로 새로 생긴 병은 없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가벼운 농사일 정도는 거들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겉보기에도 귀가 조금 어두울 뿐 거동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어 보였다. 주식은 라면이지만 라면에 곁들이는 밑반찬이 있어 모자란 영양소가 보충되기 때문이리라.
라면으로 산골마을의 유명 인사가 된 박병구 할아버지. 이제는 이웃집에 가더라도 꼭 라면을 대접받는다고 한다. 그는 “내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라면만 먹고 살아야 할 것 같아”라며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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